흔히, '칼은 선물하는게 아니다' 또는 '칼은 선물하면 안된다'라고 막연하게 이야기 하는데 경우가 많은데 과거 옛 시절 부터 그랬는지가 궁금했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인 걸까?
칼 선물의 의미, 정말 선물하는 게 아닌가?
부엌에서 종이 카드를 하나 발견했다. '칼 선물의 의미'가 쓰인 일종의 제품 보증서였다. 칼 선물을 받았을 때 들어 있던 보증서였는데, 선물에 집중하다 보니 카드는 구석 한편에 보는 둥 마는 둥 치워두었던 모양이다.
카드에서 처럼, 칼 선물의 의미를 좋은 의미로 받아들이기보다는, 흔히 '칼은 선물하는 것이 아니다' 또는 '칼은 선물하면 안 된다'라고 막연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혹은 칼을 선물로 주더라도 선물을 받는 사람이 액땜 차원에서 천 원 정도의 소액을 줘야 한다. 실제로는 선물이지만 천 원을 주고 사는 형세를 취해야 한다나.
실제로 나도 아내에게서 중식도를 선물 받을 때, 고맙다는 말과 함께 지갑에서 천 원을 꺼내 주었고, 예전에 아내가 장모님의 오래된 칼을 하나 바꿔드릴 때도, 어머니한테서 시집올 때 선물을 받을 때도 돈을 받거나 드리곤 했다.
칼이라는 날카로운 물건이 갖고 있는 부정적인 면이 더 부각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설득력이 있는 듯하면서도 정말 그런 걸까라는 궁금증이 늘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발견된 카드에는 '칼을 선물 받는 것이 아니라'라는 속설 내지는 미신은 일본 문화의 영향 때문이라고 화두만 던지고는 자세한 설명이 부족했다.
왜 칼은 선물하면 안 되는 걸까? 어디서 나온 이야기일까?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고, 알려주는 이가 없다면 직접 찾아보겠다는 마음으로 검색을 시작했다. 역시나 '그렇다더라~' 식의 카더라 통신의 이야기뿐이었다.
칼을 팔고자 하는 장사치의 근거 없는 속설인지, 아니면 우리도 잘 모르게 시나브로 스며든 일본문화의 잔재인지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문헌이나 출처 등이 언급되어 있는 글들은 찾기가 어려웠다. 민초들 삶 속에 깊이 내재되어 있어 특별한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는 걸까?
인터넷 기사나 블로그 등 검색으로는 내용을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또, 조선시대 식문화나 음식에 관한 책들을 좀 검색해 봐도 칼의 종류나 형태는 언급되어 있는 정도였을 뿐이었다.
그렇게 조선시대에 식문화나 음식에 관한 책 검색을 하던 차에, 조선왕조실록 내용을 인터넷 검색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역시! 우리나라는 인터넷 강국이다. 찾고 싶은 몇 개의 단어를 조합해 검색하며 글을 읽다 보니 드디어 아래의 내용을 발견했다.
민진원이 삼수(대급수·소급수·평지수)에 대하여 자세히 아뢰다.
[중략]
삼수(三手) 가운데 이른바 칼에 대해서는 어찌 이것을 반역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지난번에 추안(推案)을 열람하면서 칼을 주었다는 조목을 보고 이미 의심을 하였었는데, 이제 대신(大臣)의 말을 들으니 참으로 웃을 만한 일이다. 사람이 서로 칼로 선물하는 자가 많은데, 이것은 김용택(金龍澤)이 우연히 백망(白望)에게 칼을 준 것에 불과한데 목호룡이 이 일로 인해서 모아다 만든 것이니, 이것으로 말한다면 칼에 대한 말은 이미 터무니없는 데로 돌아갔다.
[중략]
그가 늙은 궁인(宮人)으로 무엇을 바라는 것이 있기에 반역을 하였겠는가? 마침 목호룡의 아는 바가 되어 그것으로 인하여 증거를 삼았는데, 그가 어찌 감히 국상(國喪)을 틈타 왕명을 위조(僞造)하겠는가? 또 그 당시 이미 죽어 뼈만 남은 뒤에 아무리 반역을 하려고 하더라도 할 수 있겠는가?
영조실록 1725년 3월
참조: 국사편찬위원회 - 조선왕조실록 (http://sillok.history.go.kr/id/kua_10103025_007)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조 2년, 삼수의 변으로부터 이야기 시작된다. 목호룡의 고변으로 일어난 사건으로 숙종 말년부터 경종을 제거하기 위해 노론의 인물들이 역모를 꾸며왔다 이르렀다.
이때, 삼수는 첫수는 칼로 암살을 도모하는 대급수, 독을 사용해서 독살하는 소급수, 가짜 폐위 교지를 지어 경종을 폐위시키는 평지 수로 총 삼수가 의논되었다라며 고변했고 이로 인해 노론의 많은 인물들은 죽임을 당했다 한다.
이후, 영조가 즉위한 후에 영조는 소론을 견제하고 노론을 중용하기를 원했던 바, 노론의 민진원이 삼수에 대해 다시 영조에게 아뢰던 대목으로, 목호룡이 고한 삼수가 터무니없는 일이었다라며 임금이 직접 말했던 기록의 일부다.
그 대목 중에 '사람이 서로 칼로 선물하는 자가 많은데'를 추정컨대, 칼을 선물하는 경우가 실제 많은데 백망(白望)에게 칼을 준 것으로 역모인 대급수를 도모했다 의심하는 것이 터무니없다의 취지로 설명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비록 한 문장이기는 하지만 조선시대에 칼을 선물하는 일은 매우 보편적인 일이다라는 것을 추정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칼을 선물하는 것이 꺼리거나 조심해야 하는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다만, 종이카드에서 일본의 잔재라 표현했던 내용은 일본 사무라이 문화와 연결이 되어 있는 것 같다.
예컨대 일본에서 칼은 지킨다(수호)보다는 벤다라는 개념이 훨씬 더 강했던 것 같고 이를 토대로 칼은 두렵고, 공포의 대상이자 일부는 자결의 의미로 확장된 것 같다.
특히나, 일본 문화 중 사무라이와 칼과 연관된 내용들은 검색만 해봐도 수많은 내용들을 볼 수 있다. 특히, 일본의 경우 칼은 일종의 신분 자체였고, 사무라이에 대한 많은 허구적 이야기와 묘사가 그런 부정적 인식을 더 강화했을 가능성이 높다.
일본에서 칼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일제 강점기를 지나 일제의 잔재로 어떤 형태로든 아직까지 남아 있는 현실은 안타깝다. 또, 동시에 일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 부정적 이미지로 인해 칼을 선물 받을 때, 마치 사는 것처럼 형식적으로 소액을 주는 일이 생겼을지 모르는 일이다. 다만, 이런 행위가 정확하게 언제부터 행해졌는지와 정확한 유래까지는 찾을 수 없었다.
결론적으로 칼을 선물하는 것은 꺼려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누군가에게 의미를 담아 선물하는 행위가 어째서 피해야 할 일이겠는가? 더군다나 일제강점기의 문화적 잔재로 인한 '그렇다더라' 수준의 이야기라면 말이다.
*칼 - 문화원형 백과 조선시대 식문화,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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