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에 대한 의문...
과거에 맡았던 냄새로 특정한 일이나 사람을 기억해 내는 현상을 프루스트 현상*이라 한다. 실제로 사람의 체취는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을 더 각인시키기도 하고, 근래에는 향기 마케팅이라는 이름으로 제품, 매장, 서비스 공간 등에서도 여러 형태로 마케팅적 접근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냄새는 후천적 학습에 의해 결정된다는 말이 있는데 좋고 싫고의 시작은 무엇이었을까? 세상의 모든 냄새를 다 맡아서 학습한 것도 아니고, 어떤 유형이나 카테고리를 묶어 유사한 냄새라면 좋고, 그 반대는 싫고 가 모두 정해졌다면 설득력이 있을까? 최초 인류가 특정 냄새를 처음 마주했을 때 그는 또는 그녀는 그 냄새를 좋은 냄새로 혹은 나쁜 냄새로 여겼을지 궁금하다.
지금의 우리는 그의 직관적 감각을 믿을 수 있는 걸까? 상대의 감각을 절대적으로 믿을 수는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데, 어떻게 특정 냄새에 호불호가 생겼을까? 당장, 주변을 둘러만 봐도 동일한 향에 대해서 다른 평가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오이, 고수, 홍어, 트러플, 재스민, 휘발유 냄새 등등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는 냄새로, 그런 종류가 적지 않다. 나 또한, 어릴 때는 다양한 향에 익숙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나이가 쌓이고 먹는 음식과 외부 자극에 대한 여러 가지로 경험들이 쌓이면서 향신료 등에 향을 즐기는 편이 되었다. 덕분에 낯선 음식을 먹는 도전이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큰 즐거움이 된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한 연구결과(뉴로사이언스 표지논문으로 실렸다고 함)에 따르면 뇌가 냄새를 맡을 때 선천적 후각정보와 후천적 후각정보를 구분해 처리한다고 한다. 즉, 유독가스나 페로몬 등 위험 및 성(性)과 관련된 후각 자극은 태어날 때부터 습득된 상태고, 음식과 관련된 후각은 자라면서 뇌가 배우가 기억한다는 것이다.**
결국 사람에게는 일정 영역은 선천적으로 유전적 수용체에 영향을 받는 후각이 있지만 후천적 학습 또는 경험에 의해 냄새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는 것이 사실인 셈이다.
냄새 분류에 대한 시도 - H. 헤닝의 냄새 프리즘...
역사적으로 냄새를 분류하려고 하는 노력은 많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20세기 초 H. 헤닝의 냄새 프리즘(Odor prism)이다. 여섯 개의 모서리에 각각 썩은(putrid), 공기(etherea), 송진(resinous), 짜릿한(spicy), 향기로운(fragrant), 탄(burned)’ 냄새 등이 있고, 이런 6개의 기본취(基本臭) 배열로 프리즘의 모양을 만들고 그 프리즘 내에 모든 냄새를 위치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초기에는 이런 구상이 후각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정도의 역사적 의의만 있을 뿐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
그러나 최근에 들어서는 분자의 종류와 농도의 차이에 따라 달라지는 냄새의 구분에는 부족함이 있긴 하지만 그의 스펙트럼 구성은 인자 분석(factor analysis) 측면에서는 획기적인 구성이 인정된다고 한다. 또, 반대로 실험설계 구조적 모순이 있었다는 주장도 있는 모양이다.
아직 냄새를 표현하는 일반화된 언어 내지는 구조적 설계가 어렵다는 것은 사람들이 냄새의 구체적인 정체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사람들은 커피 냄새나 바나나 냄새 또는 엔진오일 냄새가 서로 다르다는 것은 쉽게 알아차리지만, 미지의 물체에서 나는 어떤 냄새를 맡고 그 물체를 구체적으로 지적하지는 못한다. 커피나 바나나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냄새만 맡고 그것이 커피 혹은 바나나 냄새라고 인식할 확률은 50%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앞으로 맡을 냄새와 물질의 목록을 미리 알려 주면 맞출 확률이 높아진다. 냄새를 하나하나 맡게 한 다음 이름을 말하게 하고, 틀렸을 경우 정답을 말해 주는 학습을 하고 나면 냄새를 풍기는 물질의 이름을 맞출 확률이 98%까지 향상된다.
다시 말해, 냄새에 대한 사전 정보가 그 냄새에 대한 지각을 바꾼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냄새의 정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것은 냄새의 실제 이름을 기억에서 인출하는 능력이 미숙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
냄새는 시각적 정보가 함께해야 완벽해진다...
대상 물질에 대한 정보가 없을 때 어떤 냄새(또는 맛) 인지 알기 어렵다는 경험을 직접 했던 적이 있었다. 오래전, 아내와 대학로에서 ‘어둠 속의 대화’라는 일종의 체험형 전시에 갔었다. 전반적으로 감각에 대한 특별한 경험과 함께 매일 같이 너무나 당연하게 보고, 느끼고, 맛보고 하는 모든 감각 들을 기초로 한 내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던 경험이었다.
어쨌든, 그 전시는 눈을 가리고 완전한 암전 상태 속에서 탄산음료를 마시는 체험이 있었다. 하나는 환타였고 또 다른 것은 과일 탄산음료와 같이 평범했던 음료였다. 음료명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내와 난 음료를 다 마신 후에 탄산음료 인 것은 알았지만 어떤 맛인지 맞추지 못했다.
즉, 시각정보가 완벽하게 차단된 상태에서는 맛(또는 향미, flavor)을 알아맞히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코가 막히면 맛을 잘 못 느낀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냄새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제한되어 버렸을 때 그 냄새(또는 향미, flavor)를 맞추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실제 체험했었다.
냄새야 말로 표현이 무궁무진한 총 천연색이며, 또 시각 정보가 함께 해야만 완벽해질 수 있는 영역인 셈이다.
*프루스트 현상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소설 주인공이 홍차를 적신 마들렌의 냄새를 맡고 어린시절을 회상하는 것에 유래한 용어
** 출처: 한국과학기술원 - KIST, 뇌 속 후각정보처리의 비밀
*** 출처: 인간의 모든 감각(서해문집), 최현석 - 9장. 후각 편 및 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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